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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아버지의 매운 고기찌개
글, 사진_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14회 황인철 (참신한 산부인과 원장)
더도 말고 한가위 같기만 해라. 민족의 명절 8월 한가위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답게 티브이며 인터넷에서는 온통 명절 이야기로 가득이다. 요즘같이 초고속전철시대에 명절에 가족이 만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만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 추석은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서 그동안 못한 효도를 용서받는 날인 것 같다. 그런 용서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북적인다. 추석에 대한 기억은 조금 독특하다. 아마도 고향이 이북이신 아버지 때문이 아닐까? 많은 친척이 모여 즐거운 이야기로 며칠 밤을 지새우는 것과는 달리 일찍 차례를 지내고 잠시 아침에 윷놀이로 추석 코스프레를 한 뒤 쓸쓸함만이 찾아오는 명절이라고 할까? 그런 쓸쓸함 속에 마음속으로 부모님께 용서를 비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늘 내 가슴에는 남아 있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 가신지도 8년이 되어간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차례를 지냈던 어린 아들은 이제 어느덧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고사리 같은 손주와 함께 아버지 혼자 몰래 그리움의 눈물을 훔치셨던 추석날 그 눈물을 그리워 하며 아버지께 정성껏 음식을 대접한다. 나에게 이렇듯 추석은 그리움, 외로움 그리고 눈물이다.
올해에는 분위기를 조금 바꾸어야겠다.
차례를 지내고 남는 며칠의 여유로운 시간을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캠핑장으로 ...
추석날 캠핑 가는 것이 조금은 낯설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대보름을 보면서 가족들과 같이 야외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 않다.
아울러 이제는 절대 추석을 외롭게 보내지 않으리라 생각이 든 순간 낯설음은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캠핑장으로 가는 길은 조금 북적인다. 아무래도 산이다 보니 캠핑 인구 보다는 부모님 산소에 가는 차량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조용하고 삭막한 방안 보다는 조금 막히고 답답한 차 안이 좋은지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뿅뿅’ 오락소리와 함께 재잘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들... 추석은 어떤 날일까?”
“음... 송편 먹고 맛있는 음식 먹는 날...”
먹는 음식이면 자다가고 일어나는 우리 아들은 기념일은 음식 먹는 것 이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먹는 것 말고...학교에서 배운 대로 이야기 좀 해봐.”
“음..그리고 할아버지한테 인사 하는 날... 그런데 아빠.. 할아버지는 피자 같은 것 싫어해?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은 맛있긴 한데 피자나 파스타 같은 것도 올리면 어떨까?”
초등학생의 철없는 말도 안 되는 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내심 피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시기 1년 전 추석에는 할아버지 생각을 하시며 소주에 피자 안주를 드셨던 아버지이기에..
오늘 우리가족의 캠핑 테마는 추석이다.
추석에 할 수 있는 놀이와 음식을 캠핑장에서 해볼 참이다.
간단하게 짐을 꾸리고 캠핑장 바닥에 커다란 사각형을 그려 윷놀이 준비를 한다.
처음에는 재미없다고 안할 것 같은 아이들이 ‘도개걸윷모’를 알면서 부터는 윷놀이에 푹 빠져들었다. 윷을 던질 때마다 무엇이 나올까 환호성도 질러보고, 상대편 말을 하나씩 잡을 때면 박수를 치면서 좋아한다. 한판 이길 때마다 용돈을 걸어 놓았더니 더욱 더 윷놀이에 열중이다. 이제는 직접 말을 놓아가면서 윷놀이를 한다.
주변에 캠핑을 온 다른 가족들도 흥미로운지 구경을 하다가 이제는 가족대항 윷놀이로 발전을 했다.
역시 경기 중에 국가대표가 하는 경기가 가장 재미있다고 했던가? 가족대항별로 바꾸니 이제는 흥미를 넘어서 꼭 이겨야 되는 경기로 발전을 했다.
아이들을 울리고 울렸던 열정적인 윷놀이가 끝나고 우리집에서 저녁을 대접하기로 했다.
명절덕분에 새로운 가족들도 사귀게 되었으니 저녁도 명절분위기를 내보려고 한다.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남은 음식 몇 가지와 전을 부쳤다.
지글지글 전부치는 냄새에 아들 녀석이 내 주위를 맴돌더니 부치자마자 입을 낼름 내민다.
“아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전이 어떤 전일까?”
“글쎄...”
“이렇게 전을 부치자마자 바로 옆에서 먹는 전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전이다.”
“아 뜨뜨뜨...거워”
입에 하나 넣어주었더니 뜨겁다고 호들갑을 떤다.
조금은 소란스럽지만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쳤다. 우리가족만 저녁을 먹었으면 조금은 쓸쓸할 뻔했지만 윷놀이 덕분으로 주변 분들과 같이 식사를 해서 더욱 즐거웠던 것 같다.
머리위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떠올랐다.
“자... 우리 모여서 소원을 빌어보자. 한가위 달을 보면서 소원을 정성껏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네.”
아들 녀석이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무슨 소원 빌었니?”
“음... 맛있는 것 많이 먹게 해주고 할아버지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빌었어. 아빠가 할아버지이야기만 나오면 슬퍼하는 것 같거든.“
아들 녀석의 말에 순간 등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아버지...
그렇구나. 명절에 아버지가 없으니깐 그리 허전했구나.
아버지 손을 따라 차례를 지내고 명절을 알았던 내가 아버지가 없으니 그리 허전했던 것 같다. 한잔 술이 생각난다.
준비했다가 남은 고기 몇 점으로 찌개를 끓여본다.
아버지의 고기찌개...
무척 매웠던 기억이 난다. 명절날 저녁 술 한잔 하시면서 드셨던 그 찌개는 매웠다. 매워서, 아주 매워서, 아버지가 눈물은 음식이 매워서 흘리는 줄 알았던 나의 과거의 추억. 그 추억의 매운 고기찌개를 끓였다.
보름달 아래서 술 한잔에 찌개 한입 먹어본다.
무서운 식탐의 소유자인 아들 녀석이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하다. 옆에서 한 점 먹어보고 맵다고 물을 찾는다. 옛날에 나를 보는 것 같아 미소가 절로 지어지지만 어느새 내 눈가에도 촉촉이 젖는다.
“아빠...매워? 왜 울어?“
<고기찌개 레시피>
재료 : 소고기 300g, 고춧가루 3T, 국간장 1T, 다진마늘 1T. 들기름 1T, 대파, 양파반개 , 후추, 소금
1. 소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준다.
2.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고기를 살짝 볶는다.
3. 국간장과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같이 볶는다.
4. 어느 정도 고기가 익었으면 물을 자박자박하게 넣고 끓인다.
5. 국물이 졸아들면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6. 마지막에 양파와 대파를 넣는다.
밥에 비벼먹으면 더욱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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