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복잡한 머리로, 복잡한 삶을 그보다 더욱 복 잡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역시나 그렇게 살아온 한 사람이자 ‘Brain 속 복잡한 길을 청소하는 의사’로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나의 기록들이 복잡한 머리를 움 켜쥔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으로 전해질 수 있길 바라며……
글 쓰는 의사가 되기까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글짓기 대회에 나가 여러 번 상을 탔던 기억이 있다. 내성적인 아이였던 나는 가슴에 담긴 말을 글로 꺼내 이야기하곤 했다. 글에 대한 나의 애정은 그렇 게 작은 시골 마을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됐다. 시골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불리던 아이가 서울 학교에서는 그저 촌놈으로 불렸다. 도시 학교에서 받은 차가운 시선에 상처받 은 아이의 가슴에는 뾰족한 가시가 자라기 시작했다. 마치 스 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날을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들을 글로 풀어내며 버텼다. 쌓여가는 일기만큼 나는 더 단단해졌다.
답답했던 학창시절을 무사히 마치고, 고민 끝에 의대에 진학하게 됐다. 의대 시절은 정신없이 흘러가서 일기를 쓸 여유가 없었다. 그 시기 쓴 글이 없음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하지 만 의대를 졸업한 이후부터는 정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그래도 나름 떳떳한(?) 변명이다. 나는 전공의 수련 시절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문과적 소질을 타고난 사람은 아니다. 그저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기록하는 일을 습관처럼 해오다보니, 운 좋게 책을 내는 이 순간까지 오게 됐다. 이 책에는 1996년부터 현재까지 내 인생의 기록들이 담겨 있다. 기록의 첫 연도가 1996년인 까닭은 안타깝게도 이전의 기록들을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이 다. ‘김범태’라는 이름 앞에 ‘의사’, ‘남편’, ‘아빠’라는 수식어 들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기록들은 내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그렇게 나의 손때 묻은 일기장들에는 무관심이란 먼지가 쌓여 갔고,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결국 모두 잃게 됐다. 이것을 후 회하고 깨닫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 정된 직장을 잡고 일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다시 글을 쓰고 모 으기 시작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시대에 맞춰 대신 컴퓨터로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매우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오리바람 같은 젊음이 지나가고 세월에 조금 익숙해지는 나이가 찾아오면, 세월이 가져다주는 것이 비단 늙음만이 아 님을 깨닫게 된다. 살다보면 어느 날 문득 여유라는 것이 비 집고 들어와 복잡한 마음속에 자리를 트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나를 돌아볼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잘 살아왔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자, 앞으로의 다짐과도 같다.
이 책에는 열심히 삶의 길을 걸어온 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 와 오랜 기간 뇌혈관을 다뤄온 한 의사의 발자취가 함께 담겨 있다. 나는 뇌혈관을 다루는 의사로서 뇌혈관이 우리 인생의 복잡한 길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살다보면 때로는 길이 막히기도 하고, 길이 보이지 않아 숨이 턱 막힐 때가 있지 않 은가? 이 책에는 복잡한 머리로, 복잡한 삶을 그보다 더욱 복 잡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역시나 그렇게 살아온 한 사람이자 ‘Brain 속 복잡한 길을 청소하는 의사’로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나의 기록들이 복잡한 머리를 움 켜쥔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으로 전해질 수 있길 바라며, 조심 스럽게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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